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에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뉴시스
중국 국영 항공기 제조사 겨냥한 압박
시놉시스는 5월 28일(이하 현지 시간)부터 미국 정부의 새로운 수출 제한 조치에 따라 중국에서 제품 판매와 서비스 제공을 전면 중단했다. 미국 정부는 시놉시스뿐 아니라 자국 기업 케이던스(Cadence)와 독일 지멘스 EDA에도 같은 조치를 내렸다. 이들 3사는 전 세계 EDA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중국 EDA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상태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중국의 약점인 반도체 설계와 EDA 소프트웨어 분야를 집중 타격하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최첨단 AI 반도체 개발을 저지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주목할 점은 미국 정부가 5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중국 정부와의 고위급 협상을 통해 상대국 관세를 90일간 115%p 인하하기로 합의했음에도 이런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은 4월 2일 이후 미국에 대한 비관세장벽 대응 조치를 중단하거나 해제하기로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희토류 수출 제한과 관련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보여왔다. 중국이 전 세계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핵심 광물 희토류는 반도체·자동차·항공우주 등 첨단기술 산업에 필수 자원으로, 수출 통제가 지속될 경우 미국 첨단 산업에 엄청난 타격이 될 수 있다. 영국 정보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닉 마로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미국을 계속 압박하려고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해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도 중국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때리는 전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미국은 중국에 책임을 물릴 다양한 옵션이 있다”면서 “이미 취한 조치와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5월 28일 중국 국영 항공기 제조사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코맥)의 C919기 제작에 사용될 제품과 기술에 대한 수출 허가 라이선스를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코맥은 그동안 C919를 앞세워 세계 항공시장에 진출하고자 총력을 기울여왔다. 코맥이 개발한 중국 최초 중형 여객기 C919는 2023년 첫 상업 운항을 시작해 지금까지 중국 국영 항공사에 총 17대를 인도했고 올해 30대 이상을 공급할 예정이다.
C919는 엔진을 비롯한 운항 및 전력 공급 등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을 모두 미국과 유럽에 의존하고 있다. 이 여객기에 장착되는 LEAP-1C 엔진은 미국 GE와 프랑스 샤프란이 합작해 만든 CFM인터내셔널이 제조하고 있다. 중국은 자체적으로 창장(CJ)-1000A라는 엔진을 개발 중이지만 상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항공전자장비, 운항 시스템, 각종 제어 장치와 센서는 미국 하니웰, 콜린스, 크레인, 파커 에어로스페이스 등이 공급하고 있다. 알루미늄 동체는 미국 아르코닉, 출입문 신호 시스템은 크레인, 연료와 유압시스템은 파커, 보조전원장치는 하니웰 등이 납품한다.
주요 부품 공급사 88곳을 보면 미국 48곳, 유럽 26곳, 중국 14곳 등으로, 중국 업체 중엔 고가 핵심 장비를 공급하는 곳이 없다. 미국이 핵심 부품을 수출하지 않으면 코맥은 C919를 단 한 대도 제작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악의적 봉쇄라며 반발했다. 국제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독자적인 항공기 생산 기술을 확보하는 데 앞으로 최소 수년은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타코’로 불리자 열받은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온라인상에서 ‘트럼프는 항상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의미의 신조어 ‘타코’(Taco · Trump Always Chickens Out)’로 불리고 있다. 출처 X(옛 트위터)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는 항상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의미의 신조어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가 생겨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단어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중국은 우리와의 합의를 완전히 위반했다”며 “착한 사람 역할은 여기까지다!(So much for being Mr. NICE GUY!)”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는 5월 28일 중국공산당과 관련 있거나 안보, AI, 로봇 등 핵심 기술과 직결되는 중요한 분야의 연구자들을 포함해 중국 유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학교에 등록된 중국 출신 학생 수는 27만7000여 명으로 인도 출신 학생(33만1000여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미국에선 그동안 중국 출신 유학생이 중국공산당 및 정부와 연계돼 주요 기술을 빼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시절인 2018년에도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은 ‘중국 이니셔티브(China Initiative)’라는 이름으로 대학 등에서 중국 유학생과 연구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스파이 활동 검거에 나선 바 있다. 태미 브루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공산당이 군사력 강화, 정보 수집, 반대 세력 탄압을 목적으로 자국 유학생을 통해 미국 대학을 악용하거나 미국의 지식재산·기술을 탈취하는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이처럼 중국으로 유입되는 미국의 첨단기술을 차단함과 동시에 중국 유학생들이 핵심 기술 분야에 진입해 첨단기술을 탈취할 가능성까지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드론·항만 크레인 규제 행정명령에도 서명

5월 30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중국인 루안나 장이 연설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5월 28일 중국공산당과 관련 있거나 안보, AI, 로봇 등 핵심 기술과 직결되는 중요한 분야의 연구자들을 포함해 중국 유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미국 정부는 또 중국산 항만 크레인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00%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중국산 항만 크레인이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꾸준히 우려해왔다. 첨단 장비가 설치된 항만 크레인이 실시간 항구 정보, 군사 장비 관련 선적 정보 등을 수집해 중국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항구에 설치된 크레인의 80%는 중국 상하이에 있는 진화중공업(ZPMC) 제품이다. 이처럼 미국 정부는 앞으로 중국에 대해 공세를 전방위적으로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