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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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호황 가능케 한 4경 원짜리 ‘부채의 산’

[홍춘욱의 경제와 투자] 현 국채금리 유지 시 매년 GDP 5.5% 이자로 부담해야

  • 홍춘욱 이코노미스트·프리즘투자자문 대표

    입력2025-06-1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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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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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넘게 경제 분석을 하다 보니 ‘역사적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2012년 시진핑이라는 새로운 중국 지도자 선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국은 2012년부터 중국몽(中國夢)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공공연하게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시작된 ‘중국 제조 2025’(중국 지도부가 2015년 발표한 10년짜리 제조업 육성 정책)는 태양광부터 전기차까지 차세대 성장 산업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이런 변화에 맞서 미국은 트럼프라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렇다면 이후 미국은 어떤 역사적인 변화를 맞이했을까.

    가장 먼저 관세전쟁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미 버락 오바마 정부 때부터 각종 비관세 장벽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던 터라 2016년 이후 시작된 변화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변화는 재정 포퓰리즘의 등장이다. 재정 포퓰리즘은 미국 지도자들이 기축통화 패권을 남용하며 마음대로 채권을 찍어내는 행위를 뜻한다. 미국이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보유한 나라다 보니 마음대로 적자 국채를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2016년 본격 등장한 재정 포퓰리즘

    실제로 1980년 이후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변화를 살펴보면 2008년 이후 재정적자가 크게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그래프1 참조). 2008~2010년 재정수지 적자는 씨티그룹(CITI),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부실 금융기관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영향 때문으로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2017년부터 시작된 재정적자 행진은 금융시장 참여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 정책은 충분히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2022년부터 다시 재정적자가 확대된 것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는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도 강력한 재정정책을 시행한 덕분에 2021~2024년 평균 3.5%에 이르는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부채 증가 속도가 성장률보다 더욱 가파르게 이어지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5월 미국의 장기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한 단계 아래인 Aa1으로 낮추는 한편, 2034년 미국 국가부채가 GDP 대비 135%에 근접할 것이라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그래프2 참조). 2024년 기준 미국 GDP는 약 29조 달러(약 3경9700조 원)다. 

    하지만 무디스의 경고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아무런 고려 사항이 되지 못한 것 같다. 5월 22일(현지 시간)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대규모 패키지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에 따르면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만들어진 감세안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신규 감세를 도입하고 부채한도를 증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신규 감세안에는 팁과 초과근무 수당의 세금 감면 내용이 들어 있어 향후 8년에 걸쳐 재정적자를 약 3조 달러(약 4108조5000억 원) 이상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중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 대한 대규모 관세 부과로 부족한 세수를 충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주요 투자은행 추계에 따르면 이를 통해 GDP의 1% 남짓한 세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해외 수입 상품에 대한 수요가 둔화될 가능성이 큰 데다, 관세를 회피하려는 행동이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관세 부과에 따른 세수 증가는 이번 감세 법안이 만들어낸 적자를 상쇄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기축통화 신뢰 약화되면 이자 부담 확대 일로

    미국은 이미 2024년 GDP의 3.1%를 이자로 지급할 정도로 큰 부담을 지고 있는데, 만약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가 약화돼 미국 국채금리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4.5%에서 형성돼 있으며, 이 수준이 지속된다면 미국 정부는 연 GDP의 5.5%에 이르는 이자 부담을 져야 한다. 더 나아가 무디스 예상대로 2035년 미국 국가부채가 GDP 대비 135%까지 치솟을 경우 이자 부담은 6.1%에 이를 전망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미국에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차입 비용이 훨씬 낮아져야 한다”며 기준금리 인하를 촉구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물론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경제가 이자 부담을 이겨낼 정도로 강력한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한 재정적자로 만들어낸 억지 성장이 고금리 환경에서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계속 남을 것 같다. 앞으로도 미국 국채금리 수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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