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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관세 협상 지렛대 활용 가능성
첫째, 미국달러의 약세 전환이다. 지난해 미국달러는 미국의 상대적 경기 우위, 이른바 ‘미국 예외주의’에 힘입어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달러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달러화 가치)가 연초 대비 9% 이상 하락했다. 관세정책에 대한 우려가 미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를 자극하고, 관세 인상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면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 가능성까지 불러일으킨 결과다. 이는 미국달러에 대한 투자심리를 약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5월 미국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며 미국 자산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미국 국채금리에 상승 압력을 가해 달러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주요 6개국 통화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로화의 강세는 달러인덱스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유로존은 독일을 중심으로 재정지출 확대 기조로 전환해 경기 회복 기대가 높아졌고, 이는 유로화 강세로 이어졌다. 반면 미국은 성장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면서 유로존과 펀더멘털 격차가 좁혀지는 흐름을 보였고 이것이 달러 약세로 연결됐다. 이를 반영하듯 유로화는 연초 대비 약 11% 상승했다.
둘째, 무역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원화절상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7월 초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환율 이슈가 거론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5월 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한미 무역 협상에서 환율 문제가 언급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원/달러 환율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는 6월 6일(현지 시간)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재지정했다. 특히 이번 보고서에는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미국 대통령과 무역대표부(USTR)가 관세 권한을 활용할 수 있도록 권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환율 조작국에 대한 관세 보복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언급됐다. 이는 지난해 11월 발표된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교역국과의 협상에서 환율과 관세를 연계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 미국과의 무역 협상 국면에서 환율이 관세 협상 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국내 정치 불확실성 완화와 6·3 대선 이후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펀더멘털 개선 기대도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계엄 사태로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당시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중후반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올해 대통령 탄핵과 6·3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 불확실성이 점차 해소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연초부터 이어진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 움직임은 이미 원화 약세 재료로 시장에 상당 부분 반영된 상태다. 이에 따라 시장의 관심은 새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경기 회복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실제로 새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내수 진작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이며, 이는 향후 국내 경기 비관론을 완화하는 한편, 외국인 자금 유입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환율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구조다.
미국 경기 부진 장기화 확률 낮아
앞서 언급한 환율 하락 요인들은 적어도 올해 3분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환율이 1300원 초중반대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 다만 원/달러 환율이 연말까지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 미국달러 약세는 미국 성장 둔화에 따른 주요국 간 펀더멘털 격차 축소에 기인하는데, 인공지능(AI) 산업 등 민간 부문 투자 사이클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미국 경기의 전반적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특히 연말로 갈수록 감세, 규제 완화 등 미국 정부의 정책 지원에 힘입어 경기 추가 둔화는 제한되고 회복 기대가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달러의 반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4분기 중 달러 강세 전환 가능성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한국 2.50%, 미국 4.50%로 역전 상태(마이너스 금리차)에 놓여 있으며, 이 격차가 단기간에 좁혀지기 어려운 만큼 원/달러 환율은 중장기적으로 점진적 상승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내국인의 해외 투자 확대 역시 과거와 달리 원/달러 환율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여러 요인에 의해 환율이 1300원 초중반대까지 하락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지만 구조적 저성장, 해외투자 확대, 한미 금리차 유지 등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하면 원/달러 환율의 점진적 우상향 흐름은 유효해 보인다. 따라서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초반대로 하락할 경우 이를 단기적 저점으로 판단하고 환헤지(환율 고정) 비율을 점차 낮춰가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