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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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우크라이나 드론에 유린당한 러시아 전략폭격기

러시아 공군기지 인근 창고 임차해 대담하게 작전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력2025-06-1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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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습으로 파괴된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벨라야 공군기지 내 폭격기 잔해(왼쪽)와 공격 당시 모습. 뉴시스

    6월 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습으로 파괴된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벨라야 공군기지 내 폭격기 잔해(왼쪽)와 공격 당시 모습. 뉴시스

    6월 1일(이하 현지 시간) 러시아는 1942년 나치 독일이 옛 소련을 전면 침공한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최악의 군사적 굴욕을 겪었다. 이날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강 전략폭격기들이 우크라이나 소형 드론에 일방적으로 유린당한 것이다. 3시간 만에 러시아군의 수십억 달러 규모 전략 자산이 잿더미가 됐다.

    2023년 시작된 ‘거미줄 작전’

    우크라이나는 이번 ‘거미줄 작전’을 2023년 겨울부터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계속된 공습으로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러시아가 흔히 쓰던 장거리 자폭드론 샤히드-136이나 복제품 게란-2는 레이더에 잘 잡히는 데다, 기관총으로 격추할 수 있을 만큼 느렸다. 반면 시속 1000㎞로 날아오는 순항미사일은 얘기가 달랐다. 해상에서 발사되는 ‘칼리브르’와 공중 발사되는 ‘Kh-101’은 레이더 반사 면적이 작아 탐지하기 어렵고 파괴력도 높아서 우크라이나에 심각한 위협이었다. 이런 미사일은 일단 발사되면 요격이 어렵기에 우크라이나는 ‘화살’ 대신 ‘궁수’를 잡는 전략을 택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2022년 흑해 전역에서 드론 공세를 시작했다.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면서도 저렴한 자폭드론을 대량생산해 날려 보냈다. 또한 무인자폭보트로 크림반도와 흑해 동부 크라스노다르 연안, 심지어 러시아의 안마당이라 할 수 있는 아조프해 일대 해군기지와 항구 등 산업시설을 무차별 공격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투기에서 발사할 수 있는 ‘스톰섀도’ 순항미사일을, 미국이 ‘에이태큼스(ATACMS)’ 전술탄도미사일을 공급하자 우크라이나는 그것들도 러시아 흑해함대 공격에 대거 투입했다. 그 결과 러시아 흑해함대는 우크라이나의 집요한 공격에 큰 피해를 입었다. 전력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러시아는 흑해함대 잔존 전력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본토 크라스노다르주 노보로시스크로 대피하게 했다. 이곳도 우크라이나 드론의 표적이 되자 지난해 여름에는 내륙수로를 이용해 주력 전투함을 카스피해로 퇴각시켰다. 이에 따라 해상에서 발사되는 러시아군 칼리브르 미사일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함대지순항미사일 공격을 줄이는 데 성공한 우크라이나는 공대지순항미사일 발사 플랫폼인 폭격기를 공격했다. 러시아는 운용 효율성을 높이고자 사라토프주 엥겔스에 있는 공군기지에 폭격기 전력을 집중 배치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 국경에서 직선거리로 약 620㎞ 떨어져 있어 장거리 타격 무기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곳이다. 하지만 2023년 하반기 우크라이나군의 장거리 자폭드론 비행거리는 700~1000㎞로 늘어났다. 엥겔스 기지를 노린 드론 공습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에 러시아는 먼 곳으로 전략폭격기를 이동 배치했다. 북극 근처 무르만스크나 몽골과 가까운 이르쿠츠크의 공군기지가 폭격기 대피 장소로 활용됐다. 

    러시아 영토에 ‘지휘본부’ 설치한 우크라이나군

    우크라이나군이 많이 사용하는 A22나 UJ-22 장거리 자폭드론의 비행거리는 각각 1300㎞, 800㎞ 정도다. 이들 드론은 덩치가 상당히 큰 데다, 비행속도가 시속 120~150㎞에 불과하고 소음도 심해 쉽게 발각·격추된다. 이 같은 드론이 지금까지 위력을 발휘한 이유는 러시아 영토가 너무 넓어 모든 구역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거나 방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방공무기로 보호되는 공군기지는 사정이 다르다. 장거리 자폭드론으로 러시아 폭격기 기지에 유효타를 먹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러시아 공군기지 공격에 사용했다며 공개한 드론. 우크라이나 보안국 제공

    우크라이나 당국이 러시아 공군기지 공격에 사용했다며 공개한 드론. 우크라이나 보안국 제공

    우크라이나의 ‘거미줄 작전’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고안됐다. “멀리 숨길수록 더 쉽게 찾는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등잔 밑이 어둡다”와 비슷한 의미다. 우크라이나는 이 속담처럼 러시아군 기지 바로 앞에서 드론을 날리는 전술을 준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밝힌 작전의 전말은 러시아 입장에선 충격 그 자체였다.

    우선 이번 작전을 위한 우크라이나군 지휘본부는 카자흐스탄 국경과 가까운 러시아 첼랴빈스크에 설치됐다. 우크라이나는 대담하게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첼랴빈스크 본부에서 11분 정도 거리에 있는 창고를 임차해 지휘본부와 공작소를 설치했다. 이 창고에서 1년 넘게 드론과 폭발물들이 제조됐지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군기지 여러 곳이 파괴된 후에야 창고를 급습한 FSB는 텅 빈 창고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FSB는 해당 창고의 주인과 창고를 드나든 트럭 운전기사들을 추적해 모두 체포했지만, 그들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트럭 운전기사들은 FSB에 “화물 운송 주문을 받아 컨테이너를 실어 날랐고 화주가 요구한 시간과 장소에 트럭을 주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구한 시간과 장소에 트럭이 정차하면 원격 조종에 따라 컨테이너 상단 덮개가 열렸고 각 컨테이너에서 소형 드론 20~30대가 일제히 날아올라 사라졌다. 이들 컨테이너 트럭이 정차한 곳이 바로 공격을 받은 러시아 공군기지 인근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것과 같은 모델인 러시아군 장거리 전략폭격기 TU-95. 뉴시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것과 같은 모델인 러시아군 장거리 전략폭격기 TU-95. 뉴시스

    컨테이너에서 발진한 드론은 민수용 쿼드콥터 드론을 개조한 것이었다. 카메라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폭발물이 실린 이들 드론은 워낙 작아서 러시아군 레이더에 전혀 탐지되지 않았다. 전동 드론 특성상 소음이 적어 목표물에 도달할 때까지 러시아군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목표물인 폭격기의 설계도를 입수해 어느 지점을 타격해야 가장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를 AI에 학습시켰다. 각 드론은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를 참고해 항공기를 정확히 강타했다. 

    AI에 러시아 폭격기 약점 학습시켜

    작전 성공 직후 우크라이나 측은 항공기 41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된 전과는 14대 정도로 보인다. 러시아군 전략폭격기 Tu-95MS 5대가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파괴됐다. Tu-22M3 초음속 폭격기 6대는 완파되거나 크게 손상됐다. A-50 조기경보기 2대와 An-12 수송기 1대도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인 전과(戰果)였다.

    이번 작전이 러시아는 물론 세계 각국에 큰 충격을 안긴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렇다. 일반인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가 군사작전 수단으로 활용됐고, 그 결과가 전략적 수준에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해당 작전 직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데이비드 올빈 미 공군참모총장이 “이 사건은 전 세계 모든 군대에 경종을 울린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겉보기에 뚫리지 않을 것 같은 곳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미 공군 수장의 지적처럼 이번 사건은 전통 방공시스템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새로운 위협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오늘날 새로운 위협에 가장 취약한 나라라는 게 필자 견해다. 우크라이나 못지않게 드론 전력 강화에 집중하는 북한과 중국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군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민수용 드론을 개조해 작전을 펼쳤다. 거대한 폭격기를 일격에 파괴한 폭발물도 러시아 현지에서 조달했다. 모방 우려가 있어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는 없지만, 약간의 화학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료 등 재료를 사용해 위력적인 폭발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중 하나로 기록된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청사 폭파 테러’만 해도 짧은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일반인이 폭발물을 만들어 저지른 사건이다.

    한국에선 지난해 11월 국가전략시설 중 하나인 국가정보원에 접근해 드론으로 시설을 촬영한 중국인이 체포된 바 있다. 이런 사례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대부분 호기심 또는 항공안전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단순 범행이긴 하다. 문제는 정부와 군이 드론 침범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드론이 전통적인 방공작전에선 생각할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위협이 되고 있다. 

    북한이 최근 공개한 ‘병종별 전술종합훈련’에서 북한군 특수작전군 부대원들이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최근 공개한 ‘병종별 전술종합훈련’에서 북한군 특수작전군 부대원들이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뉴스1

    드론 위협, 한국도 위험하다

    한국군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현대전 사례에 대한 정보 수집과 분석, 전훈 도출에 소극적인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또한 무기체계 도입 사업에서도 실전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용자 중심’ 시각이 부족해 보인다.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진행하는 주요 방공망 구축 사업인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와 장사정포요격체계(LAMD), 국지방공레이더, 천호 대공포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KAMD·LAMD는 적의 미사일 위협과 이에 대한 대응 고도에 따라 공군과 육군이 각기 다른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게 뼈대다. 필자는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일원화된 합동 전력으로 공중 위협에 대응하는 현대 방공작전의 기본인 종합방공미사일방어(IAMD) 개념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국지방공레이더 도입 사업은 2022년 북한 무인기의 수도권 침범 사건을 계기로 드론 대응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확인됐음에도 계속되고 있다. 국지방공레이더 없이는 표적 획득이 불가능한 천호 대공포도 저렴하다는 이유로 대량 도입되고 있다. 

    한국은 2014년 청와대 무인기 사건을 겪고도 2022년 또 한 번 수도권 상공이 뚫리는 일을 당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군기지 드론 공습은 그냥 먼 나라 일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다종다양해진 드론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토를 지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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